경주는 '역사의 도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이 도시에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안에는 음식과 삶, 그리고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오늘은 경주를 하루 동안 걷는 여행 속에서 대표적인 전통 간식인 황남빵과 찰보리빵, 그리고 역사적 상징인 대릉원과 첨성대를 중심으로 ‘천년의 맛과 풍경’을 함께 음미해보려 합니다.
경주의 단맛, 황남빵과 찰보리빵 – 오래된 것의 가치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간식 중 하나는 바로 황남빵입니다. 1939년, 황오동에 위치한 한 제과점에서 시작된 황남빵은 지금도 오직 경주에서만 정통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경주의 명물’이라는 자부심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팥소가 가득 들어간 동글동글한 황남빵은 직접 만든 반죽과 통팥으로 채운 것이 특징입니다. 달지 않으면서도 고소하고 포근한 식감 덕분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황남빵 본점은 경주 황오동에 있으며, 매장에서는 갓 구운 빵을 따뜻하게 맛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단순한 기념품이 아닌 '경주의 맛있는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또 하나의 대표 간식은 경주 찰보리빵입니다. 보리로 만든 폭신한 빵 사이에 팥앙금을 넣은 간식으로, 담백한 보리와 달콤한 팥이 잘 어우러진 균형 있는 맛이 매력입니다. 찰보리빵은 ▲경주빵명가, ▲경주보리빵 전문점 등에서 판매되며 여행자들의 손에 하나씩 들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작고 소박한 빵 하나가 도시 전체를 설명해주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황남빵과 찰보리빵은 경주의 역사와 맛을 한입에 담아낸 ‘먹는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릉원 – 고분 사이를 걷는 시간 여행
경주의 도심 한가운데, 넓은 잔디밭 위에 솟아오른 수십 개의 둥근 언덕들. 바로 이곳이 대릉원</strong입니다. 대릉원은 신라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고분군으로, 형태만 보아도 신라의 웅장함과 고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이곳의 대표 무덤은 천마총입니다. 1973년 발굴되어, 국내 최초로 고분 내부 유물과 벽화가 대중에 공개된 이 무덤은 말 그대로 한국 고대사의 이정표라 할 수 있습니다. 천마총 내부에는 금관, 토기, 청동기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당시 장례문화와 사회 계층의 단면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대릉원 내부는 단지 고분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산책로, 수령 수백 년의 나무, 계절별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까지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그 분위기는 결코 실망스럽지 않습니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는 관광객이 적어 고요하게 천 년의 길을 걷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첨성대 – 별을 읽던 사람들의 지혜
대릉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진 첨성대가 있습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총 362개의 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구조는 365일의 태양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높이는 약 9.4미터로, 비교적 작고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수학적·과학적 정교함은 당시 신라의 기술력과 우주에 대한 인식을 엿보게 합니다. 첨성대 주변은 지금은 아름다운 야경 명소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밤에는 첨성대와 주변 꽃밭이 조명으로 물들어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또한 인근에는 ▲동궁과 월지 ▲월성 ▲경주 월정교 등이 가까이 위치해 있어 하루 일정으로 묶어 둘러보기 좋습니다. 첨성대 앞 잔디밭에 앉아 멀리 보이는 대릉원과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한 도시의 깊이를 그대로 껴안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빠르게 걸을 필요도, 많은 걸 보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천천히 보고, 조용히 느끼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 방식입니다.
경주의 하루, 조용한 감동이 머무는 시간
황남빵의 따뜻한 향, 대릉원의 고요한 풍경, 첨성대 앞에서 맞이한 별빛 가득한 밤. 이 모든 장면이 하루 안에 담겼다면, 당신은 이미 ‘경주’를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경주는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빵 하나, 고분 하나, 돌 하나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소란한 여행이 아닌, 잠시 머물고 돌아보는 여행을 원한다면 경주는 언제나 가장 조용하고 진심 어린 대답을 줄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를 천 년의 도시 경주에 걸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