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립니다. 그만큼 오래된 전통, 고즈넉한 풍경, 그리고 깊은 맛이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안동을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한반도의 정신과 유산을 천천히 걸으며 체험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인 찜닭과 간고등어, 그리고 한국의 전통미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하회마을과 월영교를 하루 코스로 소개해드립니다.
안동찜닭과 간고등어 – 강한 양념 속 깊은 정성과 시간
안동찜닭은 이제 전국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 진짜 매력은 안동 구시장 골목에 숨어 있습니다. 찜닭골목이라 불리는 안동 구시장 일대에는 수십 년 전부터 운영되던 찜닭집들이 모여 있고, 그 맛은 다른 지역과 분명히 구별됩니다. 진한 간장 베이스의 양념에 닭고기, 당면, 감자, 양배추를 넣고 묵직하게 졸여낸 안동찜닭은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풍미가 일품입니다. 대표적인 가게로는 ▲유진찜닭 ▲영호찜닭 ▲마복림찜닭 등이 있으며, 각 가게마다 단맛과 매운맛의 밸런스, 당면의 굵기 등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대표 음식은 간고등어입니다. 안동은 바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등어로 유명한데, 이는 염장을 통한 유통 방식 덕분입니다. 예전 안동 유교가에서는 외지 손님 접대용으로 미리 절여놓은 고등어를 구워내던 것이 오늘날의 간고등어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기름기 적당히 오른 고등어에 짭짤한 간이 절묘하게 배어 있는 간고등어는 밥과 함께, 또는 술안주로도 훌륭한 조합입니다. 구워지는 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옛 냄새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입니다. 고즈넉한 마을에서 찜닭 한 그릇, 고등어 한 조각을 앞에 두고 있으면 시간도 함께 천천히 익어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회마을 –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실제 거주 마을
음식을 통해 안동의 맛을 경험했다면, 이제는 이 도시의 정서를 느껴볼 차례입니다. 하회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전통마을 중 하나로,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하회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생생한 전통 마을이라는 점입니다. 수백 년 된 양반가옥과 초가집, 좁은 돌담길과 오래된 우물, 그리고 굽이치는 낙동강이 만든 ‘하회(河回)’ 지형까지 모두가 역사 그 자체입니다. 마을을 걷다 보면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그고, 잔디마당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정기적으로 공연되며, 관광객들에게 전통 가면극의 생동감을 선사합니다. 하회마을 입구에는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 공예품 가게, 한복 체험장도 있어 단순한 관람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는 전통 여행이 가능합니다. 하회마을은 조용하지만 강한 에너지를 지닌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걷는 발걸음마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개인이 공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월영교 – 안동의 밤을 밝히는 감성적인 산책로
하회마을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라면, 월영교(月映橋)는 현재의 안동을 걷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월영교는 안동댐 수변을 가로지르는 국내 최장 목책 인도교로, 밤이면 다리 위와 양 옆이 조명으로 밝혀져 로맨틱한 안동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다리 중앙에는 연못과 분수, 목조 정자가 마련되어 있으며,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커플과 가족들로 항상 붐빕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안동의 새로운 감성과 문화가 시작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월영야행, 물빛축제, 야외 공연 등 계절마다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교량 아래에는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인근에는 ▲안동민속촌 ▲문화예술의 전당 ▲안동호 생태공원 등 가볼 만한 공간이 많아 연계 관광이 가능합니다. 낮에는 조용한 호수 풍경을, 밤에는 화려한 조명과 물빛이 감싸주는 이 공간은 안동의 여운을 담아내는 마지막 코스로 제격입니다.
안동, 유교의 도시에서 감성의 도시로
많은 이들이 안동을 ‘전통’과 ‘유교문화’의 상징으로 기억하지만,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은 그 전통을 ‘지금 이곳’에서 새롭게 풀어내는 방식에 있습니다. 안동찜닭과 간고등어로 채운 한 끼, 하회마을에서의 고즈넉한 산책, 월영교의 야경 속 감성적인 마무리까지. 안동은 먹고 걷고 느끼는 모든 순간이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빠르지 않은 도시, 그러나 확실한 울림이 있는 도시. 그곳이 바로 안동입니다. 당신의 다음 여행이 한 그릇의 맛, 한 줄기 바람, 한 걸음의 여운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면, 안동이라는 도시가 꼭 어울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