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은 동해 바다의 푸른 물결과 정갈한 음식, 차분한 도시 분위기가 어우러진 여행지입니다. 속도가 아닌 ‘결’로 여행하고 싶은 날, 강릉은 최고의 선택입니다. 그중에서도 강릉의 전통을 품은 음식, 그리고 바다와 호수가 이어지는 명소들을 하루 코스로 묶으면 편안하고도 맛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초당두부’와 ‘감자옹심이’로 강릉의 식문화를 체험하고, ‘안목해변 커피거리’와 ‘경포호’를 천천히 걷는 일정으로 구성됩니다. 빠르지 않지만 깊게 스며드는 여행, 지금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초당두부 – 바닷물로 만든 강릉의 순한 맛
강릉 초당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두부 마을입니다. ‘초당두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학자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호: 초당)이 강릉 해변의 맑은 바닷물로 두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유래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간수 대신 천연 해수를 이용해 만든 이 두부는 입에 넣는 순간 고소하면서도 짜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 속에 단맛과 감칠맛이 은근히 배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초당두부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한 상’으로 구성됩니다. 맑은 국물에 두부만 넣은 순두부국, 담백하게 부친 두부전, 직접 만든 콩나물무침, 그리고 보리밥이나 흑미밥이 함께 나옵니다. 강릉 ‘초당할머니순두부’, ‘동화가든’, ‘청학동초당두부’ 같은 유명한 식당들은 점심시간이면 항상 긴 줄이 늘어섭니다.
특히 해장을 원하거나 속이 더부룩한 날, 초당두부 한 그릇은 속을 말끔히 씻어주는 정화의 느낌을 줍니다. 양념 없이도 맛있고, 소금 한 점만 찍어 먹어도 그 자체로 훌륭한 식사가 됩니다. 두부라는 음식이 이토록 다양하고 깊을 수 있다는 것을 강릉 초당두부가 잘 보여줍니다.
감자옹심이 – 쫀득한 식감 속에 담긴 강원의 손맛
감자옹심이는 강원도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대표적인 향토음식입니다. 생감자를 갈아서 물기를 짜낸 뒤, 전분을 이용해 쫀득한 반죽을 만든 다음 작게 떼어 동글동글한 옹심이를 만들어 육수에 넣어 끓이는 방식입니다. 강릉에서는 멸치, 다시마, 무로 낸 국물에 감자옹심이와 채소를 넣고 간은 간장과 소금으로 정갈하게 맞추는 것이 전통 방식입니다.
겉보기에는 수수하지만,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은 국물 맛과 어우러져 특유의 중독성을 자랑합니다. 특히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오는 날, 감자옹심이는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한 끼로 사랑받습니다. 강릉의 대표적인 감자옹심이 맛집으로는 ‘고분옥할머니 감자옹심이’, ‘순두부마을 옹심이’ 등이 있습니다. 이들 식당은 직접 감자를 갈고 반죽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옹심이 크기도 일정하게 만들고, 밀가루 없이 순수 감자로만 만들어 강원도산 감자의 진정한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자옹심이는 고기 없이도 배가 든든한 음식이며, 다이어트나 건강식을 찾는 이들에게도 인기입니다. 이 한 그릇에는 강원의 산과 손맛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현지의 계절과 정서를 담아내는 요리로 손색이 없습니다.
안목해변 커피거리와 경포호 – 맛과 풍경을 음미하는 산책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안목해변 커피거리’를 추천합니다. 이곳은 강릉 커피 문화의 발상지로, 동해 바다와 나란히 늘어선 수십 개의 카페들이 각자의 개성과 로스팅 기술을 뽐내는 곳입니다. 가장 오래된 로스터리 카페부터 감성적인 인테리어 카페까지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으며,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여유를 선사합니다.
유명 카페로는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테라로사’, ‘안목항 커피집’ 등이 있으며, 일부는 직접 로스팅 체험이나 원두 구매도 가능합니다. 카페 내부에 앉아 창밖을 보면, 파란 바다와 파도 소리, 커피 향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음료 이상의 감정이 담깁니다. 그 여유는 강릉만의 속도에서 나오는 감성입니다.
커피거리에서 멀지 않은 경포호는 자전거나 도보로 한 바퀴 돌아보기 좋은 자연 호수입니다. 경포해변과 이어지는 이 호수는 백로와 왜가리 등 다양한 철새들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관광지로도 손꼽힙니다. 호수 가장자리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어 있어 커플, 가족 단위 여행객이 산책하며 머물기 좋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호수 주변을 감싸고, 가을에는 갈대와 억새가 호수 풍경을 수놓습니다. 해질 무렵, 붉게 물든 호수 위로 바람이 일렁이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천천히 걷는 이 순간이 강릉이라는 도시의 가장 진한 감성일지도 모릅니다.
강릉의 하루, 조용한 진심을 담다
강릉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차분히 앉아 한 숟가락 두부를 떠먹고, 쫀득한 감자옹심이에 속을 데우고, 커피 한 모금에 시선은 바다로, 걸음을 옮기면 호수의 잔잔함이 기다리는 도시입니다. 이 하루는 빠르게 지나가지 않지만, 느림 속에서 진심이 전해지는 여행이 됩니다. 음식과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강릉의 하루는 당신의 다음 여행지로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